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귀주성 전투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|| [[파일:attachment/guijusungfly.png|height=100%]] || || [[귀주성]] 전경 || >외로운 성에서 약한 군졸로 천하의 사납고 날랜 강성한 오랑캐를 막아 동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를 산악처럼 우뚝 서게 하였다. '''우리 동방에서 성을 잘 지킨 것은 [[안시성주|안시성]] 이후 또 귀주가 있으니, 박서와 김경손의 공은 작지 않은 것이다.''' >---- >'''《[[동사강목]]》''' 한반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[[공성전]] 중 하나며, 이 전투로 인해 몽골의 초반 전략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. 북로군이 [[귀주성]]을 점령한 후 남하해야 했지만 [[귀주성]]에서 4개월간 발이 묶이면서 더이상의 진격이 힘들었고 남로군은 [[동선역 전투]]에서 패배하며 개성 점령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. 또한 이 전투 이후 [[고려군]]과 [[몽골 제국/군사|몽골군]]의 전투방식이 바뀌게 된다. 원래 전통적인 수성전에서도 원래 성에 틀어박혀서 수비만 하는 게 아니라 적을 압박하고 빨리 지치게 하기 위해 별동대를 내보내 찌르는 게 기본 교리다. 고려 수뇌부가 전면전을 포기하고 전투지침을 해도입보를 통한 지구전으로 바꿔서 이런 전투양상이 많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. 고려군은 몽골군이 공성전을 할 시 성문을 열고 기습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효과가 좋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교범으로 삼았고 몽골군은 고려에 침입할 때 공성전에 대한 대비를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